"대미 투자, 지금 협상했으면 5천500억弗이었을 것"…판도 바뀐 한미 통상
한창 협상 중인데…반도체發 초호황에 대미 무역수지 흑자 심화
관세 넘어 '수입 금지'까지 꺼내든 美
'관세 15% 유지' 변수 여전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은별 기자 = "작년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500억달러가 안 됐는데, 올해는 1천억달러가 넘어갈 것 같다. 일본은 오히려 줄었다. (지금 시점에서) 입장 바꿔 생각하면, 미국 입장에선 한국한테 5천500억달러, 일본한테 3천500억달러를 (요구)할 것 같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22일 대미투자 프로젝트 관련 백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의 통상 상황에서 미국과 협상했기에 대미 투자 규모를 3천500억달러 정도에서 합의한 것이었다면서, 올해 협상에 나섰다면 투자 부담이 훨씬 커졌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작년에 일단 (협상)했던 것을 잘 지켜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 반도체 호황, 한미 통상 테이블선 독 됐다
1일 총 3천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난 가운데, 1년 가까이 끌어온 대미 투자 프로젝트 협상의 면면을 살피면 그사이 한미 통상의 '달라진 판도'가 두드러진다.
우선 예상치 못한 반도체 초호황으로 1년새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관세 압박을 시작한 때보다 오히려 큰 폭 늘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약 495억달러였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까지 누적 대미 무역흑자가 674억달러를 넘어서며 지난해 연간 흑자를 이미 웃돌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를 두고 '최악의 침해국(worst offenders)'으로 지목했을 때보다 흑자 규모가 큰 폭 커진 것이다.
반면 일본의 올해 상반기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전년 동기 대비 23.4%가량 감소한 3조1천억엔을 기록했다.
지난해 협상에서 한국은 3천500억달러, 일본은 5천5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후 세부 투자 프로젝트를 놓고 미국과 협상을 이어온 한국 통상당국 입장에서는 반도체 초호황이 오히려 협상 부담을 키운 셈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한국 내 '메가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데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지난 7월부터 양사의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촉구하는 발언을 꺼내든 바 있다.
◇ 美 압박, 관세 넘어 수입 금지까지 번질까
미국의 통상 압박 수단이 관세를 넘어 수입 제한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정부가 주목하는 대목이다.
김 장관은 미국이 최근 캐나다산 자동차와 유제품 등에 수입금지 조치를 꺼내든 사례를 거론하며 "그전에는 관세를 가지고 하다가 이제는 물량으로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오는 29일부터 캐나다산 자동차와 유제품, 주류 등의 수입을 금지하기로 했다.
그는 "앞으로 통상 환경이 관세에서 수입 제한, 물량으로 전선이 확대되는 사례가 될 수 있다"며 "한미 간 통상 환경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게 우리 기업과 국익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美 약속한 '15% 관세' 유지 여부도 변수
이런 가운데 지난해 합의한 15% 관세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남은 과제다.
김 장관은 이번 대미 투자 프로젝트 MOU에 15% 관세와 관련한 별도 문구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미국 측이 '관세 15%'를 유지하겠다는 것을 구두로 확인했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특성상 언제든 이를 뒤집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정부가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단순한 투자 프로젝트가 아닌 한미 통상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장관은 사업성이 훼손된 개별 프로젝트에 대해 출자를 중단하거나 철수할 수 있다면서도, 대미 투자 약속과 통상 문제는 분리하기 어렵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는 이번 협상 전반을 평가하면서 "우리가 이걸 하는 이유가 한미 간 통상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 관세를 이 정도 수준에서 막거나 계속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것 등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고 언급했다.
eb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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