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의 통화&시장] 원화는 아직 서울에 갇혀 있다
한국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 올해도 무산됐다. MSCI는 지난 24일 발표한 연례 시장 분류에서 한국을 선진시장 관찰대상국에조차 올리지 않았다. 주목할 것은 그 이유다. MSCI는 한국 주식시장의 규모나 경제 발전 수준을 문제 삼지 않았다. 발목을 잡은 것은 외환시장 접근성, 더 정확히는 원화를 사고파는 방식 그 자체였다.
MSCI는 원화가 역외에서 인도(deliverable)되지 않고 온쇼어 외환시장에도 제약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MSCI 헨리 페르난데스 최고경영자(CEO)의 표현은 한층 직설적이다. "원화를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서울의 업무시간뿐"이라는 것이다. 거래시간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새벽 시간대에도 큰 물량을 좁은 스프레드로 소화할 수 있는 깊은 유동성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문제의 본질은 거래시간이 아니라 거래장소와 유동성 구조라는 뜻이다.
사실 정부도 이미 2023년 외환시장 구조개선 방안에서 세 가지 문제를 인정했다. 인도 가능 원화가 온쇼어 시장에서만 거래되고, 외국 금융기관이 은행 간 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없으며, 거래시간이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이를 풀기 위해 등록외국금융기관(RFI)의 시장 참여를 허용하고 거래시간을 단계적으로 24시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개편안 안에도 핵심적인 제약이 남아 있다. RFI의 참여를 허용하면서도 그 거래는 정부가 승인한 국내 외환중개회사를 통해서만 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외국 기관이 들어올 수 있게 됐지만, 가격이 형성되는 중심은 여전히 서울외국환중개와 한국자금중개라는 두 개의 국내 중개시스템에 묶여 있다. 인도 가능 원화 현물환 거래가 사실상 이 두 창구를 통과해야 한다는 구조 자체는 바뀌지 않은 것이다.
이 구조는 몇 가지 문제를 낳는다. 첫째, 가격발견이 국내 장부 안에 갇힌다. 선진국 통화라면 글로벌 은행과 전자거래 플랫폼, 멀티뱅크 플랫폼, 프라임브로커리지 네트워크를 통해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호가와 주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반면 원화 현물환은 인도 가능 거래의 중심이 서울에 남아 있어, 런던과 뉴욕의 시간대별 유동성이 자생적으로 쌓이기 어렵다.
둘째, 24시간 거래가 곧 24시간 유동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페르난데스 CEO가 짚은 지점도 이것이다. 밤새 시장을 열어두더라도 새벽 2시나 뉴욕 시간대에 큰 주문을 좁은 스프레드로 받아낼 수 없다면, 인덱스 펀드와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여전히 높은 거래비용과 미체결 위험에 노출된다. 시장이 열려 있다는 것과 유동성이 그곳에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셋째, 온쇼어 현물환과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의 분절이 이어진다. 원화는 이미 NDF 시장에서 24시간 글로벌하게 거래된다. 그러나 NDF는 달러로 차액만 정산하는 상품일 뿐 원화의 실제 인도와 결제를 수반하지 않는다. MSCI가 요구하는 것은 원화 가격에 베팅하는 시장이 아니라, 한국 주식을 사고팔 때 필요한 원화를 실제로 조달하고 결제하는 시장이다.
결국 이 세 가지 문제가 가리키는 것은 원화의 국제화를 가로막는 것이 바로, 이 거래제도라는 사실이다. 국제화란 외국인이 원화 자산을 많이 보유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거주자가 원화를 보유하고 빌리고 지급하고 결제하고 다시 환전할 수 있어야 비로소 국제통화다. 가격발견과 결제가 국내 지정 중개와 국내 계좌 체계에 묶여 있는 한, 원화는 국제 투자통화라기보다 한국 자산을 사기 위해 잠시 거쳐 가는 통화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정부의 개혁은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7월 6일부터 외환시장을 24시간 체제로 전환하고, 2027년을 목표로 인가받은 외국 금융기관이 국내 원화 계좌를 통해 원화를 거래·보유·결제할 수 있는 역외 원화 결제 제도를 추진한다. 한국은행도 이를 뒷받침할 24시간 결제망 구축에 나섰다. 방향은 옳다. 다만 MSCI가 아직 관찰대상국 등재를 보류한 것은 '제도의 발표'와 '투자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접근성'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MSCI는 시장을 지리적 명칭이 아니라 규칙과 인프라, 관행이 만들어내는 실제 거래 경험으로 평가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보완의 방향도 분명해진다. 인도 가능 원화의 가격발견을 두 중개회사 창구에 사실상 집중시키는 구조에서 벗어나, 일정 요건을 갖춘 글로벌 전자거래·멀티뱅크 채널을 감독 아래 단계적으로 허용해 거래채널을 다층화해야 한다. RFI 제도 역시 '참여 허용'에서 '실질적 시장조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등록만으로는 부족하다. 야간 호가와 거래상대방 신용한도, 결제 계좌, 원화 조달 수단이 함께 받쳐줘야 비로소 시장에 깊이가 생긴다.
역외 원화 결제는 원화 국제화의 최소 조건이다. 비거주자 사이의 원화 지급결제가 가능해져야 원화가 한국 안에서만 닫히는 로컬통화의 굴레를 벗는다. 이제는 외환위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거래를 막는 방식이 아니라 선진시장에서 입증된 안정된 거래체계 안에서 위험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옮겨가야 한다. 거시건전성 장치는 유지하되 거래 인프라는 국제화하는 것, 그 둘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이번 MSCI의 결정은 한국 주식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원화 거래제도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과 거대한 자본시장을 갖추었으나 그 시장의 관문인 원화 현물환시장은 여전히 국내 중심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의 위상과 시장의 구조가 어긋난, 말하자면 몸에 맞지 않는 옷인 셈이다. 원화 국제화의 본질은 원화를 더 쓰자는 선언이 아니라, 원화가 어디서든 누구와도 충분한 유동성과 신뢰할 수 있는 결제 인프라 위에서 거래되도록 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 MSCI가 던진 질문의 답도 결국 거기에 있다.
(이승헌 숭실대 교수/ 전 한국은행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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