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지목한 '새 옷 입은 옛 리스크' 무엇
해외투자 주도한 비은행금융기관 '만기 불일치' 지적
(서울=연합인포맥스) 김학성 기자 = 최근 해외투자의 핵심 주체로 떠오른 국내 비은행금융기관(NBFI)이 '만기 불일치'라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고 한국은행이 지적했다.
해외자산 취득에 필요한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외환파생상품의 만기가 자산의 만기보다 현저히 짧아 글로벌 위험회피 국면에서 차환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면서다.
한은은 이 같은 취약성을 두고 주체만 다를 뿐 과거부터 이어져 온 구조와 같다면서 '새 옷을 입은 옛 리스크(old risk in new clothes)'라고 표현했다.

28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김지현·김민 한은 국제국 과장은 BIS가 최근 발간한 논문집에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실었다. 논문 제목은 '글로벌 금융여건 전파에서 비은행금융기관의 역할 확대-한국의 사례'다.
저자들은 지난 10년간 비은행금융기관이 한국의 대외금융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2014년 3분기 대외자산이 대외부채보다 많은 순대외채권국으로 전환했고 그 뒤로도 계속 해외투자를 늘려왔는데, 여기서 비은행금융기관이 주된 역할을 담당했다.
금융안정의 틀 안에 비은행금융기관을 어떻게 포괄할지는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사에서 언급할 만큼 큰 관심을 둔 분야기도 하다.
비은행금융기관은 해외투자를 확대하면서 스와프·선물환 등 외환파생상품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달러를 직접 조달하는 능력이 제한적인 데다 규제 준수를 위한 환헤지 수요도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비은행금융기관의 외환파생상품 시장 점유율은 두 배로 늘었다.
저자들은 "국내 은행이 비은행금융기관의 외환파생상품 거래를 중개하면서 두 섹터 간 긴밀한 연계가 형성됐다"며 "위험회피 국면에서 파생상품을 통한 달러 조달이 경색될 때 비은행금융기관의 헤지 수요 확대는 외환파생상품 시장의 자금 조달 스트레스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는 국내 은행에도 압박으로 작용하고, 대외충격이 국내 금융시장으로 파급되는 핵심 전파 경로로 기능한다"고 덧붙였다.

저자들은 비은행금융기관이 해외 투자를 위해 외환파생상품으로 달러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파생상품 만기가 달러 자산의 만기보다 짧은 만기 불일치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장기 해외자산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 단기 파생상품 계약을 계속 갱신해야 하는 비은행금융기관은 차환 리스크에 상시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은과 저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비은행금융기관 채권투자의 99.1%가 잔존만기 1년 이상인 데 반해 외환파생상품 계약은 1년 이상 비중이 32.6%에 불과해 큰 차이를 보였다.
저자들은 "과거 은행이 국경 간 투자의 주체였던 시기와 본질적으로 같은 취약성이 새로운 기관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며 "이른바 새 옷을 입은 옛 리스크"라고 짚었다.
저자들은 위험회피 국면에서 원화가 절하되면 은행의 자본비율과 유동성비율이 하락해 대출 공급과 외환파생상품 중개 기능이 위축되고, 이것이 다시 비은행금융기관의 외환 리스크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에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환율 절하 충격이 국내 금융 전반으로 번질 수 있는 셈이다.

이어 저자들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맞물렸던 2022년 하반기에 한은이 어떤 식으로 대처했는지도 소개했다.
2022년 3분기 원화가 1년 전과 비교해 21% 이상 급격히 절하되자 국내 은행의 자본비율과 유동성비율은 모두 하락했다.
이에 외환당국은 2022년 3분기 중 개입 통계가 공개된 2019년 이후 분기 기준 최대 규모인 175억달러의 달러를 순매도했다. 저자들은 이 조치가 원화 약세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누그러뜨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한은이 은행 지원을 위한 대출 기구를 가동하고 담보 자산의 적격 범위를 일시적으로 확대했다고도 언급됐다.
결론에서 저자들은 "한국의 순대외채권국 전환이 순채무국 시기에 작동했던 대외충격의 전통적 전파 경로를 약화했다"며 "국내 금융시스템은 비은행금융기관의 만기 불일치, 비대칭적 달러 조달 수요, 은행과의 장외 연계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글로벌 금융 스트레스에 여전히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은이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정책 수단을 활용해 금융안정을 지키고 외환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hs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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