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안전자산] 유가 상승에 꺾인 엔화…"약세 이어질 것"
(서울=연합인포맥스) 김지연 기자 = 안전자산의 대표 격인 일본 엔화가 이란 전쟁 이후 오히려 하락했다.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 경우 통상 강세를 보이던 기존 흐름과 달리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 경제 구조가 유가 상승 충격에 취약하게 작용한 영향이다.
전문가들은 유가 상승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 등을 이유로 엔화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 안전자산 엔화, 이란전쟁 후 오히려 하락
29일 연합인포맥스 해외주요국 외환시세(화면번호 6411)에 따르면 달러-엔 환율은 전일 오후 3시께 159.23엔선에서 등락했다.
이란전쟁 발발 전 달러-엔 환율이 156.156엔선에서 등락했던 것을 고려하면 엔화는 이란전쟁 이후 달러화 대비 약 1.9%가량 약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엔화는 유로화 대비해서도 약 0.93% 하락했다.
안전자산인 엔화가 이란 전쟁 이후 약세를 보인 것은 일본이 에너지 순수입국인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 중 하나로, 자국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요를 해외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에너지 가격 급등은 수출 대비 수입 비용을 증가시켜 일본 무역수지가 악화하는 경향이 크다.
전일 장마감께 6월 인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98.17달러로, 전쟁 이전의 67.02달러 대비 46%가량 급등했다.
무역수지 악화는 엔화에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특히 에너지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 그만큼 기업들이 해외 에너지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더 많은 엔화가 해외로 빠져나가게 된다.
일본의 2월 무역수지는 6천670억엔(약 6조2천억원) 흑자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5.9% 증가하며 2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그러나 중동 정세 혼란의 영향으로 일본 무역 수지는 향후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이란 전쟁 시작 이후인 지난달 일본의 중동 수출액은 2천257억엔(2조1천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5.9% 감소했다. 같은 기간 중동으로부터의 수입도 8천788억엔(8조1천억원)으로 10.7% 줄어들었다.
호주 커먼웰스은행(CBA)은 "이란분쟁으로 투자자들은 유가 상승이 일본 대외수지와 엔화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며 "유가 상승에 엔화가 재차 하락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 전문가들 "엔화, 약세 지속할 듯"
골드만삭스가 지난 2월 달러-엔 전망을 135~145엔 사이로 제시하는 등 이란전쟁 이전만 해도 전문가들은 일본은행(BOJ)이 올해 금리 정상화에 나서고, 엔화가 강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란전쟁 발발로 엔화에 대한 전망은 급변했다. 유가 급등이 물가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기 위해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시기가 뒤로 밀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은 BOJ 금리 인상 시기를 기존 4월에서 6월로 수정하기도 했다.
BOJ는 이달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시장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기존 0.75%로 유지했다.
이번 회의는 9명의 위원 중 3명의 위원이 물가 상승 위험을 들어 동결에 반대표를 던지고,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가 이들의 반대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히며 매파적 동결로 해석됐다. 엔화는 BOJ 회의 이후 잠시 강세를 보였으나 이내 약세 흐름을 회복했다.
시장에서는 이미 6월 금리 인상 기대를 상당히 반영하고 있어 BOJ의 추가 정책 대응 없이는 엔화 약세 추세를 반전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일 BOJ 이후 익일물 금리 스와프(OIS)시장에서 6월 금리 인상 확률은 70%를 넘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높은 유가와 BOJ와 각국 중앙은행 간 금리 차 등을 이유로 엔화가 추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BofA는 "해외 중앙은행들의 매파적 전환 속 BOJ의 금리 인상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있다"며 엔화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무역수지 악화와 재정 악화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도 엔화의 추가 약세를 점치는 이유로 꼽힌다.
미쓰이 스미토모 신탁 자산운용의 후지모토 케이 이코노미스트는 "중동에서의 분쟁이 완화하더라도 지속적인 원유 공급 제약으로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엔화는 이란전쟁(진행 상황)과 관계없이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일본 재정 악화와 무역수지 약화에 대한 우려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단기적으로 엔화가 강세로 반전되기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엔화 약세가 투기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닌 경제 펀더멘탈에 의해 발생하고 있어 당국의 환율 개입 효과 역시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달러-엔은 일본 당국의 환율 개입 레벨로 여겨지는 160엔에 바짝 다가서 있다. 이에 당국자들은 연일 엔화 변동성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j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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