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지금] 월스트리트를 찢어버린 제인스트리트
(뉴욕=연합인포맥스) 제인스트리트는 미국 뉴욕시 맨해튼의 웨스트빌리지에 있는 약 세 블록짜리 짧은 골목길이다. 운치 있는 주거단지인 이곳은 미국 금융을 상징하는 월스트리트에 비하면 전 세계적인 인지도는 미미하다.
이곳의 이름을 딴 자기자본 트레이딩 업체(prop firm) 제인스트리트 또한 마찬가지다. 월가를 대표하는 JP모건과 골드만삭스, 블랙스톤, 시타델 같은 거물과 비교하면 금융시장 바깥은 물론 내부 사람들조차 생소한 이름이다.
이 '아는 사람만 아는', 하지만 미국 현지에선 이미 '히든 챔피언'으로 평가받는 제인스트리트가 지난해 말 그대로 월가를 '찢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파르게 늘던 트레이딩 수익 부문이 한층 더 급성장하면서 월가의 주요 경쟁업체들은 물론 대형 투자은행(IB)마저 눌러버린 것이다.
지난주 제인스트리트는 지난해 순거래 수익이 396억달러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2023년 약 107억달러였던 순거래 수익은 2024년에도 205억달러로 두 배 급증했는데 지난해에 또다시 두 배로 뛰었다. 작년 4분기에만 155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제인스트리트의 성과는 전통의 투자은행 강자들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JP모건은 지난해 순거래 수익이 358억달러였다. 골드만삭스는 311억달러였다. 제인스트리트가 순거래 수익에서 두 회사를 제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장 조성과 퀀트 트레이딩, 차익거래, 고빈도 매매 등 주력 사업 부문에서 맞부딪힌 경쟁업체들과는 격차를 더 벌렸다. 시타델증권은 작년 순거래 수익이 122억달러, 허드슨리버트레이딩(HRT)은 123억달러에 그쳤다. 제인스트리트가 올린 실적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제인스트리트의 순거래 수익이 모건스탠리 같은 전통의 강자를 앞지른 것은 금융시장 한 면의 변화를 시사한다는 점에서 주시할 대목이다.
전통적 투자은행과 제인스트리트의 거래 수익 면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고객의 존재 여부와 위험 감수 성향이다.
전통적인 투자은행의 거래 수익 구조는 크게 ▲시장 조성 ▲거래 중개 수수료 ▲융자 및 대차 수수료로 요약된다. 수익의 큰 부분이 고객 서비스 기반의 수익이라는 의미다. 고객의 대규모 주문을 처리하면서 발생하는 스프레드와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보유하게 된 포지션의 가치 변동이 '순거래 수익'으로 잡힌다.
이는 기본적으로 강력한 규제 때문이다. 이른바 '볼커 룰'이 도입된 이후 투자은행은 자기자본으로 큰 도박을 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수익 변동성을 줄이고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게 됐다.
반면 제인스트리트는 철저히 알고리즘과 데이터 기반의 차익거래(arbitrage)로 수익을 낸다.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100% 자기 자본으로 거래해서 돈을 벌어들인다.
고객 돈을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규제에서도 상당히 자유롭다.
공격적인 레버리지와 위험도 높은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 상당히 유리하다. 전 세계 45개국 이상의 시장에서 200개 이상의 거래소와 거래소 외 플랫폼에 진출한 제인스트리트는 시장 간 미세한 가격 차이를 포착해 차익거래로 수익을 뽑을 수 있다.
제인스트리트의 대약진은 규제에 묶인 대형 투자은행들보다 규제에서 자유로운 '프랍 펌'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형성된 변동성 장세에서 얼마나 유리해졌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일각에선 제인스트리트가 특히 채권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비중이 너무 커졌다며 이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기관으로 묶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인스트리트의 성장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은 ETF 시장이다. 설립 초기부터 ETF 전문 트레이딩 기업을 표방한 제인스트리트 현재 전 세계 8천개 이상의 ETF에 대해 호가를 제시하고 유동성을 공급한다.
특히 채권 ETF 시장에서 위상은 독보적이다.
제인스트리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이 회사는 전 세계 채권 ETF 거래량의 약 41%를 차지했다. 미국 내 상장된 ETF의 발행 및 환매 프로세스(primary market)에서도 24%의 점유율을 가져갔다.
과거 채권 시장은 트레이더들 사이의 전화 통화와 개인적 관계에 의존하는 폐쇄적 시장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 자본에 대한 규제가 강해지면서 대형 은행들이 채권 재고를 보유하기 어려워지자, 제인스트리트는 이를 파고들었다.
제인스트리트를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형 은행 못지않게 채권 중개 체계에서 중요해진 만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기관에 편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제인스트리트 같은 비은행 금융기관(NBFI)은 은행과 달리 예금 보험이나 중앙은행의 유동성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규제 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데이터의 투명성도 낮다.
물론 NBFI인 사모신용 펀드 등과 달리 제인스트리트는 100% 자기자본으로 거래한다. 그만큼 제인스트리트의 위기가 다른 분야로 전이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앞서 제인스트리트도 글로벌 차익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가격 조작으로 적발된 사례가 있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제인스트리트는 특이하게 'C레벨(C-suite)' 경영진이 없다. 월가에선 '무정부주의적 투자회사'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조용히 많은 돈을 벌자'가 모토인듯 언론 인터뷰도 모두 거절한다.
하지만 갈수록 벌어도 너무 많은 돈을 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언론도 주목하게 됐고 이제는 익명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거물이 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 기준으로 지난해 S&P500 소속 기업 중 제인스트리트보다 더 많은 돈을 번 기업은 단 12개에 불과했다. 제인스트리트보다 돈을 못 번 기업은 비자, 코카콜라, LVMH, 디즈니, 넷플릭스, 캐터필러, 월마트 등 모두 나열하기도 힘들다. (진정호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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