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세연의 프리즘] 수시납치와 환헤지
(서울=연합인포맥스) 결국 무산됐지만, 시도 자체만으로 박수를 받았다. 중앙대학교가 수시에 합격하더라도 수능 이후 일정 기간 내 신청하면 아예 합격 대상에서 제외해 정시에 지원할 수 있게 하겠다는 'CAU 수능케어'(aka 중수케)를 내놨다. 합격이 납치가 되는 '수시납치'를 막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 수시 합격자의 정시 지원은 금지돼 있다. 교육부는 사실상 이를 우회하는 방식이어서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바로 제동을 걸었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달랐다. 합격하고도 웃지 못하는 상황을 막아달라는 요구가 그만큼 누적돼 있었기 때문이다.
"수능 잘 볼 걱정 없이 안심하고 지원하세요!"를 내건 중앙대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수시 지원자를 늘릴 수 있고, 학생을 위한다는 이미지 제고도 할 수 있다. 또 수시로 입학했다가 아까운 수능 점수를 잊지 못하고 다음해 정시를 다시 노리는 충성도가 적은 학생들을 걸러낼 수 있다. 기껏 뽑아놓으니 나가버리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한 반수생 문제가 이 대학교의 결정에 가장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수시는 '평가의 장'인 수능 한 번의 변수에 인생이 좌우되지 않도록 기회를 분산하는 안전장치다. 6장, 많게는 7장을 쓸 수 있는 수시는 '기회의 장'이다. 어느 순간 족쇄가 될 수 있지만, 고등학교 3년에 대한 정성적 평가가 더해지는 수시는 정시보다 재수, N수생이 훨씬 적어 현역들에 유리하고, 뽑는 숫자도 압도적으로 많다.
시도 자체만으로 비판이 이어졌지만, 결국 이뤄진 '연금 등판론'도 있다. 국민연금은 환헤지 비율을 기본 15%로 올리기로 했다. 외환시장 고래가 돼 버린 국민연금의 운용에 개입해 환율 상승을 제한하겠다는 정부 계획이 국민연금 뉴프레임워크 정책으로 완성됐다.
해외에서 굴리는 돈이 약 702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늘리면 시장에 달러가 풀리고 환율은 내려간다. 당국이 직접 개입해 환율을 낮출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등판하면 즉각적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불려야 하는 국민연금이 환율 소방수로 활용되는 게 맞는지, 정부가 독립적 운용기관에 개입하는 게 맞는지 비판이 거세졌다. 환헤지를 하면 헤지 비용이 들고, 장기적으로 보면 환오픈이 수익률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국민연금은 2014년부터 단계적으로 환헤지 비율을 줄여 2018년부터 환율 변동에 그대로 자산을 노출하는 환오픈 방침을 고수해왔다. 경제가 흔들릴 때 자산 가치가 떨어져도 달러가 올라 환차익으로 상쇄할 수 있고, 분산 투자라는 운용 전략에도 환노출이 더 맞다. 여기에 기금운용본부가 재량껏 쓸 수 있는 전술적 환헤지도 있다. 필요하면 이를 통해 외환 익스포저에 어느 정도 환헤지할 수도 있어 기본값은 환오픈이었다.
국민연금의 이런 전략은 몇 년 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운용자산 증가와 함께 계속 늘어나는 국민연금의 해외투자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해지자 고민이 시작됐다. 서학개미 등 거주자의 해외투자 러시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결국 2022년 11월 기획재정부의 요청에 따라 달러-원 환율이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정한 특정 수준을 돌파할 경우 해외 투자자산의 최대 10%까지 환헤지를 실시하는 전략적 환헤지가 추가됐다. 달러-원 환율 고공행진이 극심했던 2024년 말~2025년 초 전략적 환헤지는 발동됐다. 한시적이던 이 전략적 환헤지가 연장된 데 이어 아예 환헤지 기본 비율을 높이는 뉴프레임워크에 이르게 됐다. 환헤지 비율이 변경된 15%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최대 600억 달러 규모의 환헤지가 이뤄질 수 있다고 씨티는 추산했다.
물론 환헤지가 더 유리한 때도 분명 있다.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미래 환율을 미리 고정해 놓으면 변동성을 줄이고,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분명한 기회비용이 존재한다.
수시납치와 환헤지는 닮아 있다. 둘 다 일종의 '안전'을 선택한 결과이고, 그 대가로 또다른 '기회'를 포기한다. 물론 그 선택이 어떤 기회비용을 남기는지는 나중에야 드러난다. 입시는 개인으로 끝나지만 국민연금의 선택은 모두의 노후로 이어진다. 수익률의 0.1%가 수십조 원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국민연금의 환헤지 선택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누구도 가볍게 말할 수 없다.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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