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두의 금융나침반] 데이터, 포용을 설계하다
데이터 경제는 흔히 효율과 혁신의 언어로 설명된다.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며, 맞춤형 서비스를 가능하게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데이터가 가진 더 근본적인 가능성은 따로 있다. 바로 '포용'이다. 보이지 않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닿지 않던 지원을 닿게 만드는 힘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공공 마이데이터 복합지원' 제도를 도입하며 그 가능성에 시동을 걸었다. 과거에는 고용 지원, 복지 급여, 정책자금 등을 신청하려면 개인이 제도를 직접 찾아다니거나 상담사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야 했다. 소득은 얼마인지, 가족 구성은 어떤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이미 받은 지원은 무엇인지 스스로 설명해야 했다. 정보가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는 만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복합지원 제도는 이 구조를 바꿨다. 본인의 동의만 있으면 건강 정보, 소득 자료, 자격 정보 등 여러 기관에 분산된 공공 데이터를 한 번에 모아 필요한 기관에 제공할 수 있다. 상담은 추측이 아니라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해 이루어지고, 소요 시간은 크게 줄어든다. 무엇보다 개인이 미처 알지 못했던 지원 제도까지 자동으로 연계될 수 있다.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인프라가 데이터 위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다. 취약계층은 단지 소득이 낮아서가 아니라, 정보와 접근 경로에서 소외되어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서민금융진흥원의 '서민금융 잇다'와 같이 잘 설계된 복합지원 창구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공 포털은 국민들이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별도의 가입 절차가 필요하다. 고용부의 청년정책포털 '온통'이나 복지부의 취약계층 복지포털 '복지로' 같은 것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모두 접근성이 떨어지고 이용률이 높지 않다는 고민이 있다.
여기서 공공과 민간의 협업이 중요해진다. 네이버나 토스처럼 이용자 기반이 두터운 마이데이터 플랫폼과 연계한다면 확장성과 접근성이 훨씬 커질 수 있다. 최근 보험개발원의 실손보험 청구 서비스 '실손24'를 네이버와 토스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하면서 이용률이 크게 높아진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제도와 데이터를 열고, 민간 플랫폼은 사용자 경험과 기술 역량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역할을 나누되, 목표는 함께하는 구조다.
공공과 민간의 마이데이터가 결합하면 소외계층을 위한 소액금융 매칭 서비스의 길도 열린다. 개인의 급여와 사업소득, 정부 급여, 지출 패턴, 기존 대출 상환 이력을 통합 분석해 현재의 상환 여력과 위험 수준을 산출하고, 이에 맞는 적정 대출 한도와 금리 구간, 적합한 제도금융과 복지 프로그램을 자동으로 선별하는 것이다. 여기에 통신요금 납부 이력, 전기·가스 요금, 4대 보험 가입 내역, 직업훈련 이력, 교통·소비 패턴 등 비정형 데이터를 더하면 상환 의지와 생활의 안정성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용자는 자신의 앱 하나에서 실제로 신청 가능한 긴급생활자금, 사회적 금융상품, 서민금융지원 제도를 한눈에 확인하고, 필요하면 신청 단계까지 바로 연결된다. 흩어져 있던 정보를 한곳에 모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정보 비대칭과 접근 비용은 크게 줄어든다. 이는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선택의 질을 바꾸는 일이다.
더 나아가 민간 플랫폼은 '예방적 금융 안전망'으로 기능할 수 있다. 취약계층의 급격한 지출 증가, 고금리 대출 이용, 연체 확대 등 채무 위험 신호를 조기에 탐지하고, 이를 지방자치단체 복지 부서, 서민금융 유관기관, 신용회복·채무조정 기관의 재무 상담 서비스와 연계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위기 징후가 나타났을 때 사후 대응이 아니라 선제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체계다. 데이터는 사후 구제가 아니라 사전 예방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물론 전제는 분명하다. 데이터 활용은 철저한 동의와 목적 제한, 책임 있는 관리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공공은 신뢰의 기준을 세우고, 민간은 기술적 완성도와 이용자 중심 설계를 책임지는 균형이 필요하다. 포용은 보호와 활용이 함께 갈 때 가능하다.
이렇게 된다면 데이터는 단순한 효율화 수단을 넘어 사회적 포용의 인프라가 된다. 취약계층의 만성적 금융 소외가 채무 불이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완화하고, 복지와 금융이 따로 움직이던 구조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
데이터 경제의 다음 단계는 효율을 넘어 포용으로 나아가야 한다. 보이지 않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닿지 않던 제도를 닿게 하는 것. 마이데이터가 그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면, 데이터는 성장의 도구를 넘어 사회 통합의 자산이 될 것이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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