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동결 배경과 전망] 유가급등이 초래한 성장·인플레 부담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미 기자 =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0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중동사태가 물가와 성장에 미치는 파장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중동 전쟁으로 성장은 하방, 물가는 상방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한은이 섣불리 금리를 올리거나 내릴 수 없는 처지를 반영했다.
2월 말 이후 미국과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웃돌며 폭등했고, 달러-원 환율은 1,500원대로 치솟는 등 금융시장은 매우 불안한 모습을 나타냈다.
지난 3월 물가가 전년대비 2.2% 오르는 것에 그쳤으나 높게 오른 유가가 쉽사리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보여 향후 물가가 더 오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아직 안정적인 데다 물가 충격이 얼마나 지속될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선제적 금리 인상을 논하기에도 이르다.
고유가 부담에 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더 꺾일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이번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낮추고자 26조2천억 규모의 '전쟁 추경'에 나서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재정을 통한 정부의 부양 기조와도 엇박자를 내는 셈이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2.50%로 동결했다.
작년 5월 금리를 인하한 후에 7월과 8월, 10월, 11월, 올해 1월과 2월에 이어 7차례 연속 금리를 유지했다.
◇ 끝나지 않은 이란전쟁…커지는 물가 부담
이번 금통위 금리 동결은 시장이 예상했던 결과다.
연합인포맥스가 국내외 금융기관 19곳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화면번호 8852)에서 참가자 전원은 금리동결을 전망했다.
중동 전쟁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된 가운데 한은이 신중한 기조를 보일 것이라는 게 금리 동결을 점치게 한 배경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금통위 직후인 지난 2월 말 이란을 공습하면서 한은의 통화정책 셈법은 한층 복잡해졌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웃도는 수준으로 급등했으며 이는 지난달 우리나라 석유류 물가를 9.9%나 높이는 등 물가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석유류 물가상승률은 러·우 전쟁 초기인 2022년 10월(10.3%)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물가 전체를 0.39%포인트(p) 높였다.
이번 주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에 동의했지만 이미 한 달 이상 전쟁이 이어지면서 에너지 기반 시설과 인프라가 파괴됐으며,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봉쇄 상태가 지속되면서 석유 공급의 차질 우려가 커졌다.
정부가 석유류 최고가격제를 지난달 13일부터 시행하고 유류세 인하율을 대폭 확대하면서 고유가 부담 완화에 나선 점은 긍정적이지만 2분기에는 물가상승률이 3% 가까운 수준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전쟁 추경'이 고유가로 인한 경제 충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물가를 일부 자극할 가능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달러-원 환율도 중동 사태로 무섭게 치솟았다.
이란 전쟁 휴전 소식에 최근 1,480원대로 내려왔지만, 지난달 한때 1,520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오르며 1,500원대 환율이 상당 기간 지속됐다.
3월 달러-원 평균 환율은 1,486.64원으로 지난 2월의 1,449.32원보다 40원 가까이 상승했다. 이달 들어서는 1,504.49원까지 평균환율이 올라갔다.
박종우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달 12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중동사태가 향후 통화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면서 "금리 결정 등은 훨씬 신중하게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중동사태의 충격을 면밀히 관찰한 후에 금리의 방향성을 잡겠다는 것이다.
이란 전쟁으로 우리나라 성장률 눈높이도 낮아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0.4%p나 낮췄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데다 원유 수급에서도 중동산 비중이 높아 우리나라 경제가 구조적으로 더 취약하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다.
씨티는 2.4%에서 2.2%로 낮췄고, 바클레이즈는 2.1%에서 2.0%로 하향 조정했다.
OECD는 성장률 전망치는 낮췄지만,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1.8%에서 2.7%로 무려 0.9%p나 상향 조정했다.
한편 정부의 집값 안정 대책 등에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폭은 다소 둔화 흐름을 이어갔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4월 첫째주(6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직전주 대비 평균 0.10% 상승했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는 2월 첫째주 이후 7주 연속 둔화해 0.05%까지 낮아졌다가 지난 2주간 계속 확대돼 0.12% 오른 바 있다. 이후 3주 만에 상승폭이 둔화했다.
◇ 올해 한두차례 인상 가능성…이르면 5월 인상 시그널 나올 듯
시장의 관심은 중동 사태로 2분기나 3분기에 기준금리가 인상될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이란 전쟁으로 성장률이 낮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추경 집행과 반도체 경기 호조 등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완충할 여지가 있다.
결국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가 통화정책의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3월 수출은 반도체의 '초호황'이 지속됨에 따라 전년대비 50% 가까이 급증한 861억달러를 기록했다. 사상 최대 기록이다.
2월 경상수지 흑자 역시 231억9천만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반도체 호황이 이어진다면 성장률 우려는 약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공급 충격에 불과할 것으로 평가된다면 통화정책으로 대응하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이미 한 달 이상 전쟁이 길어진 점과 종전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국제유가가 곧바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은 한두 차례 정도 한시적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잡는데 방점이 찍힐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당장은 추경을 통해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지만, 물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명백한 상황에서 계속해서 금리를 조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볼 수만은 없다.
오는 4월과 5월 물가상승률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예상보다 빠르게 긴축이 단행되는 것도 가능하다.
일부의 금리 인상 전망에도 시장에서는 한은이 연내 기준금리를 내내 동결할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실용적 매파'로 평가되는 신임 신현송 총재의 경기 판단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그는 인사청문회 준비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중요한 것은 경제 흐름을 잘 읽고 시스템 차원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서 충분히 파악한 다음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sm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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